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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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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하지 않으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아니면, 울컥 치솟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시화선집<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 시대 대표 서정시인 도종환의 시화선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책은 도종환 시인이 30년 동안 펴낸 아홉 권의 시집 중에서 아끼고 좋아하는 시 61편을 골라 ‘물의 화가’라 불리는 송필용 화백의 그림 50점과 함께 엮은 시화선집이다. 시와 그림을 통해 ‘고요와 명상’을 형상화한 두 작가가 전하는 ‘마음의 풍경화’는 잔잔한 위로가 되어준다. 이번 개정판은 도종환 시인의 초판 부록 시와 송필용 화백의 초판 수록 작품 외 추가된 신작을 재편해 여백이 깊어진 디자인으로 시심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마음의 여백이 필요한 모든 이들, 간절한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소리 없이 잦아드는 시의 숲을 거닐어본다.
저자
도종환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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